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그라니트 자카 (문단 편집) == 국가대표 경력 == 자카는 부모의 국적인 [[알바니아]]와 자신이 태어난 [[스위스]] 두 곳다 대표로 뛸 자격을 가지고 있었는데 고심하던 중 알바니아 축구 협회가 그를 무시하는 처사를 보였다며 결국 [[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]]을 선택한다. 2011년 6월 4일 [[웸블리 스타디움]]에서 열린 [[잉글랜드]]와의 [[유로 2012]] 예선전을 통해 국가대표에 데뷔한다. 스위스 축구 협회는 자카를 런던 올림픽 본선에도 데려가려 시도했으나 자카는 새로운 팀에서의 적응을 이유로 차출을 거부한다. 여하튼 자카는 국가대표팀의 주전 멤버로 서서히 자리매김했고 [[2014년 브라질 월드컵]] 본선 스쿼드에도 포함되었고 팀의 조별 예선 2차전이었던 [[프랑스]]와의 경기에서는 월드컵 본선 무대 첫 골을 기록하기도 한다. [[UEFA 유로 2016]] 스쿼드에도 당연히 포함. 알바니아와의 첫 경기에서 좋은 활약을 해 1:0 승리에 일조했고, MOM에 선정되었다. 루마니아와의 2차전 역시 MOM에 선정되었다. 그러나 16강전 승부차기 2번 키커로 나와 PK를 실축하였다. 브라질을 상대로 [[2018 FIFA 월드컵 러시아]] 조별리그 첫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. 첫 경기에서는, 터프한 플레이로 일관한 스위스가 브라질과 비겼다. 조별리그 4차전 세르비아전에서는 어마무시한 왼발 중거리골로 동점골을 뽑아냈으며 이후 역전골을 뽑아낸 [[제르단 샤키리]]와 함께 골을 넣은 이후 자신의 혈통을 상징하는 알바니안 이글 셀러브레이션으로 세르비아 국민과 선수들에게 빅 엿을 선사해 주었다.[* 자카와 샤키리는 코소보 난민 출신이다. [[슬로보단 밀로셰비치]] 시절 세르비아가 알바니아계 코소보인들을 무차별 학살했기 때문에 이들의 [[세르비아]]에 대한 감정은 한국이 일본에 가지는 감정 이상으로 험악하다. 더구나 자카는 아버지가 민주화 투쟁을 하다 옥고를 치른 가정사도 있었다.] 이 때문에 샤키리와 함께 벌금 납부 징계를 당했다. 16강전에서 패스로는 나쁘지 않은 모습을 보여줬지만, 수비시 포르스베리를 놓치는 결정적인 실수를 범하면서 스위스의 탈락을 막지 못하였다. 자카의 가장 큰 단점이 결정적인 순간 발목을 잡은 것이다. 아스날에서 폼이 최악이었을 때도 국대에서만큼은 축신의 면모를 보이면서 [[애국자]]형 선수라는 비아냥도 들었다. 2020년 9월 3일, 은퇴한 [[슈테판 리히슈타이너]]의 뒤를 이어 [[스위스 축구 국가대표팀]] 주장으로 임명되었다. 역시 국대 자카 아니랄까봐 [[UEFA 유로 2020]]에서도 대활약을 펼치고 있다. 16강 프랑스전에서 1도움을 기록하는 등 맹활약하며 SOTM을 받았고 조국의 8강행을 이끌었다. 8강에선 경고 누적으로 출전하지 못했는데, 대신하여 들어간 [[데니스 자카리아]]가 자책골을 넣고, 스위스의 수비상황에서 퇴장까지 나오는 등 팀은 고전을 면치 못하였다. 출전은 하지 못해도 주장으로서 멘탈을 잡아주는 모습을 보였으나 결국 승부차기에서 멘탈을 놓친 키커들의 연이은 실축으로 아쉽게 대회를 마감하고 말았다. 2022년 3월 29일 친선경기 코소보전에서 [[A매치]] 1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.[* 여담으로 자카는 코소보 혈통이다.] 이후 [[2022 FIFA 월드컵 카타르]] 명단에도 들면서 자신의 3번째 월드컵 무대를 밟게 되었다. 카메룬과의 첫 경기부터 세르비아와의 최종전까지 제 역할을 든든하게 해줬고 특히 세르비아와의 최종전에서는 공격포인트만 없었을 뿐 또 다시 세르비아에게 비수를 꽂는 활약을 펼치며 공식 MOM에 선정되었다. 16강 포르투갈전에서는 팀이 6-1로 대패하면서 월드컵 여정을 멈추게 되었다. [[UEFA 유로 2024/예선]] 6차전 안도라전 1골 1도움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